문재인 정부 출범 후 금융소비자보호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깊다. 금융당국도 체질개선과 제도개혁을 통해 소비자 보호를 강력히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하지만 정작 개혁의 토대가 되어야 할 법률 규정의 미비로 인해 금융사의 자발적 협력을 요청해야 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논란을 빚고 있다. 국회에서 번번이 발목이 잡혀 몇 년째 표류하고 있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올해는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 주요 쟁점은 무엇인지를 시리즈로 살펴 본다. [편집자 주] 현재 논의되고 있는 금융소비자보호법안에 대한 학계와 금융업계의 반응은 여러 가지 논란에도 불구하고 일단 소비자보호만큼은 과거보다 진일보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그동안 금융소비자보호의 의미와 위상을 체계적으로 규정할 법이 없는 상황에서 감독당국의 권한도 제한적이었다는 점에서 금소법 제정이 소비자 피해구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금융업권에서는 금소법으로 인해 블랙컨슈머 양성 등 부정적인 영향이 미칠 수 있을지 우려하고 있고 있는 반면, 소비자단체에서는 금융감독체계 개편 등 구조적인 문제가 반영되지 않은 데 대해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 전문가 '금융통합법' 최초, 금융사 '블랙컨슈머' 우려
학계 전문가들은 금소법이 자본시장법의 금융투자상품, 은행법상의 예·적금상품, 보험업법상의 보험상품 등을 단일법으로 통합하여 규제하는 '금융통합법'의 성격을 지녀 소비자 보호에 효과적이라는데 공감하고 있다.
윤민섭 한국소비자원 책임연구원은 "금융회사를 생산자로, 판매 및 중개업자를 유통자로 구분하면서 금융상품판매 전 과정을 통합해서 관리할 수 있다"며 법안의 취지를 설명했다. 고동원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소비자 보호 체계를 바로 잡기 위해서라도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안수현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안의 핵심 사안에 대한 논의는 지금까지 충분히 됐다"며 "소비자 보호라는 원칙에서 보면 현 법안은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금융회사는 원칙 강화에는 공감하면서도 '블랙컨슈머'의 부작용을 우려했다. 최근 금융당국의 소비자 보호 노력의 강화되면서 보이지 않는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소비자가 부당한 피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점에 공감하지 않는 곳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지금도 잘못을 회피하고 금융회사에 책임을 떠넘기려는 블랙컨슈머들이 있어 과실여부를 판별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토로했다.
문제는 금융회사가 분쟁 해결을 위해 이들을 판별하기 보다는 금융당국의 제재를 피하기 위해 보상으로 해결하는 일이 잦다는 점이다. '우는 아이 떡 하나 주는 심정'인 것이다. 하지만 이는 사회정의 측면에도 맞지 않고 불합리한 재원 누수가 발생해 전체 소비자 후생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우려가 남아있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의도적으로 대출을 받은 뒤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며 "금리가 높은 건 사실이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소비자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게 된다"고 덧붙였다.
◆ 손해배상책임, 금융감독체계 등 아쉬운 점도 있어
손해배상책임 등 일부 규정과 금융감독체계와 관련해서는 부족함이 있다는 평가도 제기된다.
실례로 불완전판매 발생시 금융회사가 과실이 없음을 입증한다면 소비자가 설계사 또는 대출모집인 같이 판매업자 또는 중개업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해야하는데 이들 다수가 영세한 경우가 많아 문제 해결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설사 그 전에 금융회사가 보상을 해주더라도 판매·중개업자에게 다시 구상권을 청구하기도 한다. 결국 금융회사는 모든 책임을 소비자 또는 영세업체에 전가하는 셈이다.
윤민섭 한국소비자원 책임연구원은 "정부안에 따르면 불완전판매가 발생 시 금융회사가 자신들의 과실이 없음을 입증하면 책임을 지지 않게 되어 있다"며 "금융상품 중개업자나 판매업자의 잘못도 금융회사가 책임져야 하는데 회피하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최운열·이종걸 의원안에 포함된 금융감독체계 개편의 필요성도 정부안에서는 최종 제외된 것에 대해 아쉽다는 의견도 남아있다. 이는 금융산업에 대한 정책과 감독 기능을 분리하자는 주장으로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이기도 하다.
이를 두고도 의견은 엇갈린다.
안수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 안이라도 먼저 통과해서 소비자 보호 체계를 차근차근 만들어나가야 한다"며 "계속 거대담론만 논의되는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반면 이성환 금융소비자네트워크 공동대표는 "지금처럼 금감원의 권한이 크면 건전성 감독에만 무게가 쏠리게 되어 소비자 보호가 취약해진다"며 "세계적으로도 금감원처럼 모든 권한을 가진 곳이 별로 없다"고 지적했다.
◆ 소위 상정도 불투명, 올해 통과 장담 못해
한편 현재 국회로 공이 넘어간 금소법 통과 여부는 아직까지 안갯속이다. 금융위원회를 비롯해 여당을 중심으로 통과를 자신하고 있지만 실제 통과까지는 험난한 일정들이 남아있다. 법안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상임위 의결(법안소위·전체회의) → 법사위 의결(법안소위·전체회의) → 본회의 의결까지 거쳐야 한다.
당장 이달 22일 열리는 정무위원회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소위)에서 논의 여부조차 불투명하다. 여당은 이미 금소법을 주요 법안으로 분류해놓았고 나아가 소위 상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여당 간사대행인 유동수 의원실 관계자는 "감독체계 개편은 이견이 많았지만 금융소비자보호체계에 관해서는 여야할 것 없이 공감하는 사안이다"고 말했다.
반면 야당은 모든 것이 불투명하다는 입장이다. 소위에서 논의될 안건조차 정해지지 않았고 상정되더라도 각 항마다 면밀하게 검토해야 하기 때문에 통과 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무위 야당 간사인 김종석 의원실 관계자는 "법안 통과에 시간이 정해져있는 것은 아니다"며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의 경우도 논의가 지체되면서 뒤늦게 통과됐다"고 설명했다.
통상 국회 상임위 심의·의결 및 공포안이 정부로 이송되는데 30~60일 가량이 소요되고 공포까지 일주일이 더 걸린다. 이 점을 고려하면 이달 내 소위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다시 한 번 해를 넘길 가능성이 높다.
금융위원회 금융소비자정책과 관계자는 "금소법의 경우 '결론은 입법이 되어야 한다'는 결말에서 교착상태에 빠져있다"면서 "국회와 소통을 계속하며 법안 통과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결국 말 많은 금소법 통과는 올해도 표류할 가능성이 적지 않아 보인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우고, 국내 금융시장의 균형잡힌 발전을 위해 금소법은 반드시 입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 공통된 목소리지만 매년 국회문턱을 넘지 못하는 이유를 소비자들은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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